오세린

2009년부터 지금까지의 활동


2009

서울에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ZARA, Forever 21, H&M의 첫 매장이 들어오던 때였어요. 모든 생필품을 5,000원 이하로 파는 다이소가 500호점을 돌파했고, ‘예스1000’, ‘젬스토리’, ‘못된고양이’처럼 1,000원짜리 저가 액세서리 전문점이 지하철역 지하상가와 번화가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바구니 가득 액세서리를 담아도 몇만 원을 넘기지 않았어요.

어느 날, 명동 한복판에서 저는 백열등 조명 아래 걸려 있는 수백 개의 귀걸이들에게 시선을 빼앗깁니다. 그리고 이 액세서리들을 모아 각각의 실리콘 틀을 만들고, 그 틀에 파라핀(밀랍)을 부어 똑같은 모양을 복제하죠. 이들을 쪼개고 이어붙인 후 금속주물을 부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로치와 반지 등을 만들었고요.

2010

처음엔 모양새가 엉성해서 실제 착용이 어려웠습니다. 실제 쓸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가짜를 모아 새로운 진짜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전시나 프로젝트가 잡힌 것도 아니었지만 100개는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집에 작업실을 차렸습니다.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공모전에서 상을 받아 암스테르담에도 다녀왔어요. 아동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작업을 유지했는데, 생각해보면 가장 안정적으로 작업을 했던 시기 같아요.

2011

시간이 지나며 완성도가 점점 좋아지고 형태도 다양해졌습니다. 저는 이 시리즈에게 모방과 속임수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공예트렌드페어에도 참여했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청년창업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룩북도 찍었습니다.

2012

삼청동에 위치한 갤러리 예담 컨템포러리의 초대로 동명의 개인전 ⟨모방과 속임수⟩를 열었습니다. 덕분에 몇몇 매체에 전시가 소개되었고 보그 Vogue Korea의 화보에 4페이지에 걸쳐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이 화보에는 오리지널 샤넬 목걸이와 제 작품 속 짝퉁 샤넬이 뒤엉켜 등장합니다. 갤러리 삼신, 갤러리 EW, 아라아트, 더 브릿지 갤러리의 단체전에 참여했고, 공예트렌드페어에도 한 번 더 참여합니다.

2013

갤러리 보고재, 국립현대미술관, 호림아트센터, China Millennium Center, 갤러리모아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고, 여러 패션화보에 작품을 보탰습니다. 무채색 작업을 주로 만들었는데 정원의 기적이라고 이름 붙였어요. 압구정 편집샵에서 작품을 팔기도 하고요. 이런 여정에 대해 심소미 기획자는 “싸구려 복제품의 여정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의 성공적인 자기 신화를 상기시킨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2014

문화역 서울 284, 갤러리 PLUG FACTORY, 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이 즈음에 작업이 한곳에 맴돌고 있다고 느낀 것 같습니다. 잡혀있던 전시를 취소하고 여러 레지던시에 지원했는데 전부 떨어지더라고요. 심사위원들이 작품을 공예품으로만 보는 것 같아 드로잉으로 포트폴리오를 채워 부산에 있는 레지던시 예술지구_p에 지원했습니다. 제게 큰 전환점이 된 곳이에요.

2015

1년간 부산에 머물렀어요. 여러 장르와 국적의 작가들을 지켜보며 작가로서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당위성을 많이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작업을 하진 못했어요. 대신 dslr 카메라와 스튜디오 조명 쓰는 법을 배웠는데, 그동안 모아온 길거리 액세서리를 분류하고 하나씩 기록한 저쪽의 컬렉션을 전시했습니다.

2016

대구의 가창창작스튜디오에 장기입주 작가로 선정되어 대구로 짐을 옮겼습니다. 대구로 옮기자마자 작가를 선정해 중국 항주에 3개월씩 보내주는 교환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항주와 관련된 소재를 찾던 중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이우라는 도시를 알게 됩니다.

이우는 우리나라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3분의 2를 생산, 유통하는 도시였습니다. 특히 전세계 최대규모의 소상품도매시장인 푸톈시장에는 그동안 수집해온 저가 액세서리와 부자재가 가득했습니다. 저는 이 곳에서 뭔가 작업을 해볼 생각으로 조선족 가이드를 고용한 후, 짝퉁을 찾는 바이어처럼 푸톈시장을 돌아다니기도 했어요. 이우에서 만난 김 사장의 소개로 베트남의 동반(Đồng Văn)의 액세서리 공업단지도 방문했고요. ‘카피캣 copycat (오리지널 제품을 베껴 비슷하게 흉내내는 것)’을 전문으로 미국 월마트와 글로벌 SPA 브랜드에 액세서리를 납품했기 때문에 이우에 비해 규모가 수십 배 규모였습니다. 두 곳의 기록과 인터뷰는 이후 가창장작스튜디오 결과보고전을 통해 ⟨남사장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과 사진으로 전시했어요.

2017

경남도립미술관의 ‛싱글채널비디오’라는 기획에 초대되어, ⟨남사장 이야기⟩를 좀 더 편집한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단독 상영합니다. 처음으로 아티스트피를 받았고요. 뿌듯했습니다.

2018

2016년에 방문했던 베트남의 액세서리공장 대표와 협업 베트남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어떤 브랜드의 상품이라도 일주일이면 대량복제가 가능한 이 공장에게 ‘유니크’한 디자인을 제공해주고, 대가로 그 공장의 모든 설비와 노동력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직접 만든 반지 6점을 준비했고 공장 기숙사에 한 달간 체류하며 이것이 대량생산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변형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공장에서 생산된 판매용 제품 600여점은 세움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린 개인전 ⟨반짝임을 나열하는 방식⟩에서 원본과 함께 전시됐고, 샘플의 일부는 공장에 남겨졌습니다.

금속공예과 대학원에 입학했고, 신한갤러리 역삼, KCDF 갤러리, 이유진 갤러리의 단체전에 참여했습니다. 공예주간 기획프로그램으로 대학원 친구들과 팀을 만들어 라운드테이블과 전시를 겸한 ⟨케이크, 포-크, 토-크⟩를 기획했습니다. 안봐도 비디오 7회에 초대되어 영상을 상영했고, ⟨베트남 프로젝트⟩와 ⟨새들은 날기 위해 머리를 없앤다⟩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됩니다.

2019

상업화랑에서 열린 단체전 ⟨박원순개인전⟩에서 썩은 귤을 황동 오브제로 만든 귤쨈, 마그마를 전시합니다. 씨알콜렉티브의 단체전 ⟨패브릭하우스⟩에서 발표한 흙을 돌보는 시간은 치매에 걸린 외할아버지가 더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는 땅에서 흙을 가져와 액자를 만든 작업이었습니다. 두 전시를 통해 장르의 구분을 좀 더 무너뜨릴 수 있었습니다.

보안여관과 기획한 공예주간 부대프로그램 ⟨잔술집33⟩에서는 공예작가들이 만든 잔에 수제맥주를 매칭해 샘플러를 팔았고, 워크샵 ‘여성과 공예 – 공예를 통해 여성을 말한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2020

보안클럽에서 열린 하얀 밤 까만 초대에서 공예전시의 확장을 시도하는 전시∙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공예작가 다섯 명이 만든 주안상에 해산물 안주 5종과 쌀술 2종 매칭해 120명의 유료관객을 1분만에 모객했습니다. 이벤트를 열고 여럿에게 알리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n/a, 유아트스페이스, 코사이어티, 갤러리 라이프에서 열린 단체전과 자문밖문화축제,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에 참여했습니다.

2021

누크갤러리, 서울공예박물관, 유금와당박물관에 열린 단체전, 예술장터 ⟨prmop:studio popup⟩, 밀라노디자인위크를 통해 금속의 물성이 강조된 신작을 선보였습니다. 세 전시에 참여한 작품 모두 엄연히 금속공예로 분류되는 전시였고, 이 작업들은 공예가의 자세로 만든 것 같아요.

공예주간 기획프로그램으로 유튜브 채널 ⟨크로커다일 남자훈련소⟩와 함께 페이크 다큐를 찍어 인기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